독특한 재료를 통해 고정된 미술의 영역을 뛰어 넘다.

현대 미술의 표현에 있어서 재료는 예술적인 조형 활동의 결과물을 이루는 물질을 말한다. 20세기에 들어 소재 선택과 활용 및 표현은 점점 다양해 졌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재료와 방법의 차이는 미학적 관점을 형성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재료의 선택은 중요한 일이며 미술가의 미학적 지향을 알리는 출발점으로 인식해야 한다. 60년대의 팝 아트와 70년대의 미니멀 아트 및 개념미술은 우연을 특징으로 하되 새로운 정신적 배경을 바탕으로 특이한 재료와 매체를 선보였다. 그리고 선택된 재료의 특성과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절묘한 결합이 이루어질 때 작품은 큰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미술 재료의 다양성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마련하게 되었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출하게 되었다.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이루어 낸 문화적 업적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고 발전되었다. 전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된 미술 재료의 한정된 영역에서 벗어나, 미술과는 공통적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물을 예술로 끌고 들어온 10명의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탕을 이용하여 모란꽃으로 탄생시킨 구성연, 플라스틱 화분이 아닌 신문과 책을 화분으로 만들어 그곳에 식물을 가꾸는 김도명, 부서진 장난감 조각과 이태리타올을 이용해 작업을 하는 김민, 소금 작가 김시연, 스와로브스키를 산수화와 접목시킨 김종숙, 그리고 스테인레스에 그림을 그리는 김지광이 있다. 또한 상품라벨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김지민, 비누를 깎아 일상생활의 감성을 이야기하는 박용선, 가치 없는 먼지를 모아 가치 있는 작품으로 구성하는 여경섭, 그리고 전단지를 이용하여 미디어를 고발하는 유영문과 같은 작가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 활동에 필요한 개념과 미술 재료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여 미술 소통의 효과와 이해의 심도를 한층 높이는 시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번 전은 현대 미술에 대해 심층화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 이다. 그리고 다양하고 독특한 재료를 작품 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현대미술의 중요한 맥락을 짚어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해석 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미술가들의 영감 촉발에 기여하는 효과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술가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스스로를 매 순간 변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새로운 작가들의 실천으로 보여주는 예시들을 통해서만 세대는 또 다시 변혁할 것이다.

구성연(Koo, Seong Youn)

구성연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을 소재로 자신의 상상을 재구성하여 어떤 의미를 생산한다. 2009년 ‘사탕’을 이용해 아주 묘한 느낌의 ‘모란꽃’을 사진으로 재현한다. 여기서 피어있는 동안은 눈부시고 아름답지만 이내 지고 나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는 꽃과 달콤하지만 결국 혀끝에서 녹아 없어지는 사탕을 통해서 연관성을 찾게 된다. 작가는 황홀감과 달콤함이란 두 사물의 특징을 통해 이것이 현대인의 욕망 표상임을 보여준다.

본래의 정물화는 사물들을 배열하여 그 사물이 갖는 연계성을 통해서 그 시대의 흐름을 반영시켰다. 구성연은 정물화의 개념을 그만의 방식으로 구축하여 후기 자본주의 속성을 지닌 ‘사탕’을 통해 ‘꽃’이라는 식물로 이미지를 바꿔, 시대 미학적 ‘커뮤니케이션의 황홀경’을 디지털 테크놀러지 이미지로 재현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새롭고 야릇한 의미체계의 21세기 정물화를 바라본다.

김도명(Kim, Do Myoung)
김도명은 지식을 담은 의학 전문서적, 신문, 사전을 이용하여 음각과 양각, 축적과 분산의 반복 방법을 통해 각종 항아리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 생명을 심는다. 그의 작품은 문자언어로 지식을 담는 틀에서 생명을 담고 키워내는 작은 틀로 그 의미와 역할이 바뀐다. ‘종이’와 ‘씨앗’이라는 생명과 순환의 상징적 알레고리는 자연의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함축하여 나타낸다.

그의 작품은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성격을 나타낸다. 이는 자연에 개입되지만 해를 끼치지 않고, 언젠가는 소멸하지만 다시 생명을 깨워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대지미술 프로세스이다. 흙, 씨앗, 대지, 그리고 나무 등 생명체 구조의 기본 단위를 연상시켜 생명과 자연계의 순환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그는 근대 이후 자연을 정복하려던 인간의 야망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민 (Kim, Min)
김민은 한국 전쟁 이후 주체성 없이 외래 문화와 고유 문화가 혼재되어버린 21세기의 한국 사회의 현 주소를 고발하고 있다. 그는 이태리 타올과 부서진 장난감을 이용하여 한국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구성한다. 정체불명의 불순한 혼합 문화가 확대 재생산되는 한국문화의 허약성을 지적하고, 전망부재의 현실 속에서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역동성을 집중하고 있다.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코카콜라와 같은 외국 상품에 물들어 있는 기이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문화의 자주성을 보존하려는 노력보다 타국의 문화를 모방하는 현재의 모습을 지적해 나가고 있다.

김시연(kim, Si Yeon)

김시연은 슬플 때 흐른 눈물이 더 짜듯,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소금을 선택한다. 자그마한 기둥의 형태로 바닥을 채워 나가거나 일률적인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가며 잔잔히 뿌려진 소금은 섬세한 시각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툭’하고 건드리면 무너져 버리거나 ‘후’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섬약한 위태로움 또한 공존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일상에서 채집한 감정의 기록을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 속에서 공간과 사물을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가상의 이야기를 익숙한 생활공간에 가져다 놓는 방법으로 낯섦과 친근함이 공존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야기 속의 사물과 현실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상황에서 관객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와,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미지 속에서 상상한다. 이렇듯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을 보내며 무심코 지나가는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김종숙(Kim, Jong Sook)

김종숙은 먹이나 화선지 대신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탈인 스와로브스키(Swaroveski)를 픽셀(Pixel)처럼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산세의 흐름과 대기의 율동에 따라 어둠과 밝음의 차이나 지형의 높낮이가 색깔이 다른 보석들을 통해 꼼꼼하게 착점(着占), 양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귀하고 값지며 고급스러움에 대한 탐닉을 갖고 있다. 그것이 실현을 향한 집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적 자연관으로 보는 성(性)과 이(理)로서의 자연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인간성의 부재와 욕망의 대명사인 물성(보석)이 존재한다. 작가는 물성의 반복적인 상징이자 소비사회의 기호(記號)를 시사한다. 작가가 이 일환으로 등장시킨 ‘스와로브스키’는 삶을 지배하려는 이중적 얼굴의 표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조형적 관점에서 합일시키며 그 사이에 자신의 언어를 완성하려 한다. 이것은 현존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으로 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 역사주의(Neo-historicism)의 이해 틀로 읽어야 할 것이다.

김지광 (Kim, Ji Kwang)

김지광은 스테인레스에 그라인더로 그림을 그린다. 스테인레스는 캔버스이고 그라인더는 붓이다. 단순하고 간결한 철판의 특성은 최소한의 표현에 적합한 재료이다. 금속판의 차갑고 단순한 이미지는 그에 의해 풍성한 이야기의 장으로 변모한다. 도시 주변의 평범한 풍경에서부터 정물 그리고 아름다운 여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서정성은 재료의 금속성과 대비를 이루며 그 효과가 배가 된다. 이렇게 상호이질적인 요소가 충돌하면서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체의 풍부한 변화를 표현해 장식성과 서정성을 축소하고 단순성과 명료성을 확보해 나간다. 일반적으로 미학적 지표를 설정하고 적합한 재료와 방법을 찾는 거시적 방법을 지향하지만, 작가는 재료와 방법을 먼저 선택하고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방향성을 모색하는 미시적 접근 방법을 따르고 있다. 이로써 재료의 특성과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절묘한 결합을 이루어 내고 있다.

김지민 (Kim, Ji Min)

김지민은 라벨에 주목하여 대량의 상표를 입수한다. 상품의 가치를 보증하는 라벨은 소비사회에서 자본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상표를 재료로 하여 자본주의와 상업주의 구조는 물론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비의 정치’를 건드리고 있다. 기업의 대표적인 상표는 시장자본주의 소비미학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작가는 동일한 라벨을 수없이 이어붙임으로써 그 라벨의 흡입력을 해체하는 전략을 통해 시장자본주의의 상품미학에 저항한다.

라벨로 구성된 ‘the fan’시리즈는 무엇인가에 열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일종의 블랙홀과도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들이 엉성하게 얽혀 있는 라벨의 뒷면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무한확장형의 블랙홀. 그것은 소비사회가 걸어놓은 주술 속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지게 만드는 통로이자 덫이며, 소비와 소유의 욕망이 빠져드는 ‘유혹하는 심연’이다. 그는 허망한 사물에 대한 무한집착, 몰입이란 소비사회의 특성에 주목한 홀릭(holic)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용선(Park, Young Sun)

박용선은 향기를 간직한 비누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그의 단상을 기록한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가깝게 제시하는 작업을 통해서 작품을 최소한의 관여로 구성한다. 실제 사물의 원형과 사물 자체를 존중하며 최소한의 간섭을 통해 사물의 탈 물질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신발, 옷, 수건, 방석 등으로 재현하여 일상 사물을 통한 특정한 정서적 상태를 경험을 느끼도록 한다. 갓 걷어낸 수건의 향기와 포근함을 비누라는 물성을 그대로 제시한 체 모종의 단어들을 삽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대상이 담아내는 다양한 의미를 확장 및 정제시키는 방식을 통해 작업을 이끌어 간다. 단어는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작용하는 의미기재들을 모은 것으로, 이는 작가와 세계를 이루는 문화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이며 범문화적 의미들을 제시하고 있다.

여경섭(Yue, Keong Sub)
여경섭은 먼지를 통해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라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윤리를 바탕으로 작업 한다. 그는 우주의 한 부분인 흙에서 육화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소멸성 속의 인간을 탐구 하며, 개체의 삶 그리고 세상과 인류문화의 순간적일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먼지는 일상의 순간에서 일어난 일, 한순간의 덧없음 그리고 생성과 소멸의 기록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고 뭉쳐서 어떤 형태를 이루고 다시 덧없이 허물어지는 먼지를 통해서 작가는 우주의 모든 것은 해체와 전환의 과정임을 보여 주려 한다.

그의 사진 작업은 예술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와 역사에 관한 특유의 사고와 감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합적 응축물이다. 명작이나 일상적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예술사적 아이콘을 전환 시킨다. 창조의 가능성은 혼돈에서 나오듯, 명작을 인용하여 낯익은 것을 통해 선험을 발견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관계를 우리 자신, 자연 그리고 세상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궁리하게 한다.

유영운(Yoo, Young Wun)

슈퍼맨이라는 이미지는 힘과 정의를 상징한다. 슈퍼맨이라는 ‘이미지(기표)’를 통해서 ‘기의’를 이해한다. 이미지를 통해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중적인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의 허구적 판타지를 풍자한 그의 작업들은 인쇄 매체라는 올드 미디어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소통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사회적 실제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시각화함으로써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물질적 존재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글 art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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