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숙〈인공 풍경〉캔버스에 혼합재료, 스와롭스키 117×80cm 2009년

풍경화 한 폭을 소개한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가 명산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눈여겨디지털시대의 풍경화
보면,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 산수화는 바로 겸재의 〈금강산도〉에서 기본 골격을 따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겸재 작품의 ‘표절’인가. 아니다. 화가 김종숙은 미술사의 명화를 공개적으로 ‘참조’하고, 거기에 자신의 창작을 가미해 독자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원본(origin)의 복제(copy), 혹은 부분적인 인용을 정당한 창작방법론으로 적극 활용한 작품이다. 남의 작품의 요소를 몰래 가져와 자기 것인 양 속이는 ‘표절’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김종숙은 우리나라 옛 그림의 골격을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전사하고, 원래 그림의 주요 선에 오스트리아에서 생산되는 크리스탈 스와롭스키 같은 인조보석을 붙이는 작품을 제작한다. 수많은 구슬로 화면을 자수 놓듯 장식했다. 마치 컴퓨터 이미지를 구성하는 픽셀 같은 느낌의 점들이다. 김종숙은 전통 산수화의 붓 자국, 요컨대 준(皴) 대신에 지름 2mm 크기의 작은 보석 구슬로 점경(點景)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인공의 구슬이 줄지은 ‘인공의 선’으로 ‘인공 풍경’을 새롭게 창안해낸 것이다. 작가가 구슬을 붙이는 일은 정교한 장인 공예가의 작업에 견줄 만하다. 화가의 어린 시절에, 부친께서는 나전공장을 운영하셨다. 이때 나전칠기의 밑그림으로 사용했던 산수화나 화조화 같은 ‘복고 체험’의 자양분이 오늘날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계승된 것이다.

‘인공 풍경’은 전통 산수화와 무엇이 다른가. 그림에는 ‘손(붓)의 흔적’이 아예 없다. 매끈한 원색 바탕에 인조보석이 밤하늘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첩첩산중에 피어오르는 이 빛들의 잔치야말로 겸재 정선의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현대 풍경화’가 아닌가. 김종숙의 그림은 전통을 딛고 전통을 넘어 서서, 현대 속을 부딪치고 현대를 이어간다. 과거/현재, 평면/입체, 회화/공예 등의 이중구조가 공존하는…, 혼성(hybrid)의 그림으로.

2011. 9/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