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크릴로 진경산수화를 그리고 그 위에 크리스털을 수놓는 ‘크리스털 페인팅’ 기법으로 유명한 김종숙의 이번 전시에서는 수십만개의 고급 크리스털로 만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은 2014년 작 ‘루미너스 그레이지’(Luminous Greige)

밑그림 그리고 보석으로 수놓는 ‘크리스털 페인팅’ 기법 사용
산‧바다‧우주 이미지 동시에 풍기는 ‘빛나는 푸른 산’ 등 눈길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지난 2007년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란 파격적인 작품을 공개한다. 사람 두개골에 2kg에 달하는 백금을 입히고 여기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다. 200억원의 제작비도 화제였지만 두개골 전체를 감싼 다이아몬드가 내뿜는 빛의 매력은 많은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지난 4월 17일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래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이 작품을 연상시키는 회화 작품이 공개됐다. 수십 만개의 크리스털이 알알이 박힌 김종숙(48) 작가의 진경산수화는 고전의 운치는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된 감각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크리스털 페인팅’이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주목받아 온 김종숙 작가의 ‘인공풍경’ 전이 오는 5월 13일까지 부산 갤러리 래에서 진행된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김종숙은 어린 시절 나전공방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공예적인 요소를 반영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인공풍경’ 연작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인공풍경’ 연작은 아크릴로 그린 진경산수화에 스와로브스키(오스트리아의 보석제조 회사)의 크리스털을 수놓아 화려함을 강조한 작품이다.

진경산수화란 조선 후기인 18∼19세기에 성행했던 화풍으로 산천(山川)의 실제 경치를 그리는 산수화를 말한다. 조선 대표화가 겸재 정선에 의해 시작돼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김홍도, 이인문 등 수많은 화가들이 추구했던 화풍이다.

김종숙의 ‘인공풍경’ 연작은 작업과정부터 독특하다. 먼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진경산수화를 그린 후 선 위에 크리스털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 과정을 통해 높은 산과 아찔한 절벽, 깊은 계곡과 강의 흐름, 고즈넉한 정자 등이 화려한 빛으로 재탄생한다. 빛의 밝음과 이 주변에 형성된 어둠으로 산수화의 농담(濃淡)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빛나는 푸른 산’(Luminous Blue Mountain)이다. 파란색 아크릴 물감으로 웅장한 산을 그리고 그 위에 수천 개의 크리스털로 수놓은 작품은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다. 선에 집중하면 산처럼 보이고 색에 집중하면 바다의 세찬 파도처럼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점점이 박힌 크리스털을 중심으로 보면 밤하늘의 은하수가 떠오른다. 산, 바다, 우주의 매력을 동시에 담아내며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이름 붙인 이 ‘크리스털 페인팅’ 기법은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크리스털 크기는 큰 것이 직경 1㎝, 작은 것은 0.2㎜ 정도다. 작은 작품에는 2만개, 대작에는 22만개까지 사용된다. 놀라운 것은 크리스털을 붙이는 작업을 전부 손으로 한다는 것이다. 색의 효과 등 작품의 완성도를 꼼꼼히 따져가면서 직접 일일이 붙인다. 한 작품에 기본 3~4개월씩 걸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기법을 활용한 매화도(梅花圖)도 선보이는데 산수화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작품이 ‘분홍 매화’다. 아크릴 물감으로 분홍 매화나무를 표현한 후 그 위에 형형색색의 크리스털을 새겨놓은 작품으로 실제 매화보다 더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만년설처럼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종숙은 “자연과 이와는 정반대인 보석을 대비시킴으로써 현대인의 깊은 곳에 내재된 욕망 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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