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숙의 회화

인공산수, 차용된 이미지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회화를 회화이게 해주는 특정성 즉 회화의 본질은 무엇보다 재현을 들 수 있다. 그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된 그림이 재현회화이다. 대체로 이는 사물, 세계, 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의 형태로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닮은꼴에도 불구하고 재현회화가 대상의 전체 국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라고는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건 사실 불가능하다. 엄밀하게 말해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행위는 그 대상의 전체가 아닌 어떤 특정의 국면만을 재현하는 선택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니까 대상이 지닌 구조적인 특질이나, 빛과 사물이 부닥치면서 만들어내는 유희, 그 표면질감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환기나, 대상이 떠올려주는 상징적 메타포 등 대상으로부터 어떤 국면만을 취사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행위는 의식적인 층위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층위에서 부지불식간에 행해질 수도 있다. 대상의 특정 국면이 다른 국면들과 갖는 차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비교적 소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구상미술 혹은 형상미술이라고 한다면, 비구상미술이나 추상미술은 그 차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강조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김종숙의 그림은 작가에 의해 ‘선택된 드로잉’이라고 명명된다. 이는 작가의 그림이 기존의 이미지(자신이 그리지 않은)들 중에서 어떤 이미지를 선택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며, 또한 그 이미지의 전체 국면이 아닌 어떤 부분만을 선택해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그림은 두 번의 선택행위가 중첩된 것이다. 외관상 형상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작가의 그림은, 그 이면에서 회화의 본질로서의 재현이 갖는 속성과 차이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선택행위를 주지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본과 사본, 모본과 부분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엿보게 한다.

작가에게서 이런 원본 혹은 모본에 해당하는 이미지는 전래하는 문인화와 민화이다. 문인화와 민화의 특정 부분을 차용 각색하는 방법으로써 이를 자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경향은 대략 서너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작가는 같은 크기의 변형 캔버스에다 약 300여개에 달하는 소품들을 그려서 마치 모자이크처럼 배열해놓는다. 이것들은 주로 나무, 나비, 꽃 등을 소재로 한 초충도와 화조도 같은 전통 민화에서의 부분 이미지를 차용 각색한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소위 사임당 코드로 명명된 경향의 그림들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임당은 여성 고유의 미적 감수성과 아취가 느껴지는 화조도와 초충도로 유명하다. 그 원화의 부분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작가는 형상이 있는 그림과 일종의 띠 그림의 형태로 추상화한 화면 24개를 마치 체스 판처럼 엇갈리게 배열하는 방법으로써 일종의 다중화면을 연출한다. 여기서 형상이 있는 그림과 추상화면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존재감을 지니면서도, 의미론적으론 서로 내통하는 관계에 있다. 그러니까 띠 그림으로 나타난 색채들은 순전히 임의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형상 그림에 나타난 주조 색을 각각 색 띠로 환원한 것이다.

이와 함께 심사정의 연화도를 차용하고 각색한 그림을 보면, 원화를 페인팅으로 옮겨 그린 화면과 이를 드로잉으로 환원한 화면의 사이에다가 띠 그림 형식의 화면을 배열해놓고 있는데, 이 역시 형상의 색채를 띠 그림으로 추상화한 것이다. 특히 이 시리즈 그림은 원화의 동일한 모티브를 각각 페인팅과 드로잉 그리고 추상화면, 이렇게 세 가지 버전으로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모티브를 다양한 버전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는 예는, 작자 미상의 민화 금강산도 10곡 병풍 그림을 부분적으로 차용해 그린 일종의 드로잉화에서 보다 적극적인 형식을 띠게 된다. 3개 화면이 한 세트를 이루는 그림, 그리고 6개 화면이 한 세트를 이루는 그림에서의 각 화면들은 세트 그림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자체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그림으로도 존재감을 지닌다. 여기서 작가는 원화에서의 이미지 전체를 차용하는 대신에 그 부분 이미지만을 차용해서 그린다. 이 시리즈 그림에는 여타의 다른 그림보다도 소위 선택된 드로잉이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만큼 근작에서의 메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원화의 부분 이미지를 옮겨 그린 정도가 수치로 환원되고, 이는 그대로 각 그림의 제목으로 붙여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제목 이상의 특정성을 그림에다 부여해주는 행위로서, 원화와 차용된 이미지 사이에 작가가 얼마나, 어떻게 개입했는가를 암시해준다. 말하자면 원화를 차용하고, 변형하고, 마침내는 이를 자기화하는 의식적인 행위자로서의 작가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일련의 그림들은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이후 한 창작 방법론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패러디에 연계돼 있다. 주지하다시피 패러디는 작가의 그림에서 보듯 기존의 이미지(작가의 경우에는 민화)의 전체 혹은 일부를 차용해서(탈맥락화), 이를 자기화하는(재맥락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그 이면에 원본과 사본 즉 원작과 이로부터 유래한 이미지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패러디는 흔히 원작 혹은 원본이 간과했었을 수도 있는 어떤 의미를 일깨워줄 수도 있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원작이 억압하고 있는 어떤 혐의를 주지시킬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원작을 부연설명하거나 다른 의미를 덧붙임으로써 원작을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패러디는 말하자면 원작의 부수장치이거나 보조장치로서의 의미와 함께, 원작에 대한 일종의 주석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역시 분명 패러디의 존재방식이긴 하지만, 패러디로 하여금 패러디이게 해주는 그 진정한 의미는 기생(寄生)의 논리로부터 온다. 즉 패러디에 대해서 원작은 숙주로서만 의미를 가지며, 이를 자양분 삼아 패러디는 원작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원작과는 최소한의 상관성마저도 결여한) 자신만의 자족적인 존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처럼 패러디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기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과 더 친숙한 신세대 작가들의 생리에 부합한다. 또한 이는 온갖 이미지들로 넘쳐나는, 이미지가 없는 곳으로 눈을 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환경과도 맞물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종숙의 패러디 그림들은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한 한 방편이면서, 동시에 그 이면에는 이미지가 존재하는 당대적 방식에 대한 논평마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작가의 그림과 원화와의 차이는 특히 화면을 축조하는 방법에 의해서 현저하게 두드러져 보이는데, 원화에서의 먹그림이 생경할 수도 있는 인공적인 재료로 옮겨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펄 성분의 안료(거의 가루 수준의 인쇄용 유사 크리스털 알갱이)로 바탕을 처리한 후, 그 표면에다 투명 실리콘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리고 그 드로잉을 따라 일종의 유사 보석(극소형의 유사 크리스털 보석과 유사진주구슬)을 입자처럼 덧붙여나가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림은 마치 원화에다 먹지를 대고 가장자리 선만을 따라 그린 듯한 최소한의 형상으로 축약되고, 원화의 유기적인 형상은 선 그림으로 변형된다. 더불어 그 표면질감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편, 빛이나 시점의 각도에 따라 마치 무지개와도 같은 일종의 프리즘 현상(빛의 스펙트럼)이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김종숙은 일종의 차용된 이미지를 통해 전통의 맥락 속에 개입하여, 전통을 변형하고 마침내는 이를 자기화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시각적 이미지를 촉각적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The Paintings of Kim, Jong-sook

Artificial Landscape, Appropriated Images

Kho, Chung-Hwan (art critic)

The specifications or basic attribute that allow paintings to be as paintings perse come from the method of representation. Artworks created based on this theory are representational paintings. Generally, these appear sensuously in similar forms of things, worlds and objects. However, despite the similarities, representational paintings cannot be said to reconstruct all aspects of the object, it is simply impossible to do so. To be more precise, efforts at the representation of any object, can only be the selected outcomes at the representation of certain aspects of the object and not as a whole. Accordingly, only certain aspects of the object have been selected such as structural qualities, merriment created by the collision of light and matter, the emotional awakening evoked by the superficial texture, and symbolic metaphors reflected by the object itself. Such selective actions can take place at the conscious level and also unknowingly at the unconscious level. If perceptions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pecific aspects of the object and other aspects appear relatively passively as figurative or formalistic art, then it can be said that non-figurative or abstract art actively interprets and emphasizes such differences.

The paintings of Kim, Jong-sook can be referred to as “selective drawings” specially chosen by the artist. This means that her paintings have been drawn based on certain selsective images from basic existing images (not drawn by the artist) and reflects the selection of certain parts and not from all aspects of the images. The paintings of the artist also show the overlapping of two selective actions. Superficially, the works of the artist simultaneously implicate formalism and abstract expressionism, revealing her awareness of the specifications and differences of representation as the true nature of painting and emphasizes selective actions derived from the process. And furthermore, her awaren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riginal and the duplicate, of the whole and the part is revealed.

The artist takes the images of the original or the whole from the works of Korean literati and folk Art. Specific aspects are appropriated and adapted from the works of literati and folk Art and through this method, the images are personalized in the works of the artist. This tendency falls into several divisions, the most prominent being the arrangement of more than three hundred small paintings like a mosaic in canvases of the same size but different shapes. The contents include specific parts of images of trees, butterflies, flowers and birds, appropriated and adapted from traditional paintings.

On the other hand, there are paintings that follow the so-called “Sa imDang code.” As it is generally known, SaimDang is famous for her paintings of flowers and birds, and plants and insects, with her uniquely feminine artistic sensitivity and elegance. The artist appropriates certain parts from the original painting, mismatching formalistic paintings and twenty four abstract pictures in stripes as if in a chess game, producing a type of multi-surface painting. Here formalistic paintings and abstract surfaces exist autonomously and meaningfully, are in collusion with each other. Accordingly, the colors in the stripe of picture surfaces are not chosen randomly but are revived from the main colors of the formalistic picture into the respective stripes of colors.

In analyzing the work appropriated and adapted from Shim Sajong’s lotus painting, the artist has arranged stripes of picture surfaces between the surface of the painted adapted original and the surface revived in the form of drawing, the color forms being made abstract as a stripe painting. This series diversifies the identical motives of the original works of art into three versions, that is, through painting, drawing and abstract surfaces.

Such reconstruction of identical motives into diverse versions can be noted more clearly in the partial adaptation of the traditional folding screen painting “Mt Geumgang” (by artist unknown) through the method of drawing. Three pictures form a set of drawings and six pictures form another set of drawings and in these respective sets, each surface exists as a separate individual picture. Here, the artist appropriates only parts of the images from the original works of art. As the “selective drawings”, the thematic awareness of the artist is stronger in this series than in others, showing that these drawings form the main in her recent works of art. Interestingly, the extent of adaptation of the partial images of the original has been revived in numbers and then reinstated as the title in each individual work of art. This goes beyond the action of simply infusing distinctive qualities in the title of a painting. This shows the level and method of involvement of the artist between the original and appropriated images of art. In other words, the artist shows her true self in appropriating from the original, transforming, and in the conscious action of personalizing these images.

These array of paintings are linked to the method of parody, recognized as a method of creativity since post-modernist pluralism. In using the method of parody as can be seen her works of art, the artist appropriates a whole or part of the basic image de-contextualization (in the case of the artist, traditional painting) and undertakes the process of personalizing re-contextualization these images. On the other side, this involves awaren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riginal and the duplicate, that is the images evolving from the original. Here, the method of parody can enlighten certain facts that the original work has overlooked and emphasize what the original has attempted to suppress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Furthermore, parody can elaborate or add more meaning, making the original more creative. So parody can be both an accompanying or assisting apparatus, a cornerstone of the original work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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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clearly the method of survival of parody, but the real meaning behind parody exists in the theory of parasitism. For parody, the original work of art acts only as the host and it does not elaborate by feeding on the nutrients but achieves an autonomous existence (even by eliminating any minimal connection to the original). This conforms with the mentality of new generation artists who are more familiar with consuming existing images rather than producing new images. This also relates with today’s art environment with overflowing images, making it impossible to turn to other environments with no images. Kim, Jong-sook’s parody of paintings is a method to achieve her unique images and at the same time, involves critique on the present method of image existence.

The difference in the paintings of the artist and the original works of art can be clearly seen in the method of building up surfaces. The artist makes the original painting done in Korean calligraphy ink appear crude through the usage of artificial materials, for example, using pearl-based materials (almost powdery crystal grains used in printing) on the background and then by drawing on the surfaces by using transparent silicon. Then, pseudo jewels (tiny pseudo crystals and pearl beads) are fixed on the drawing. Through these line of processes, the works of the artist appear in minimal suppressed forms as if the outer lines have been traced directly from the original, transforming the organic form of the original into a line picture. Moreover, the texture reacts sensitively to light and following the angle of light and visual point, a rainbow-like prism phenomenon (light spectrum) appears.

As such, Kim, Jong-sook intervenes in line with tradition through appropriated images, transforming tradition and revealing the possibility of personalization. Together, the artist has progressively reproduced visual images into tactual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