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개 수정과 산수화의 ‘이질적 조화’

정신이 강조되는 전통 관념산수화 이미지와 현대 물질·소비 문명을 상징하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한 화면에서 만나면 어떤 작품이 될까.

김종숙의 ‘인공 풍경-유토피아 10’, 162.4×130.3㎝

이 같은 전혀 이질적인 소재의 만남과 조화, 충돌을 통해 이 시대의 문화, 삶의 행태 등 숱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있다. 8년째 ‘인공 풍경(Artificial Landscape)’ 연작 작업을 하고 있는 김종숙씨(45)다.

김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 먼저 캔버스에 산수화 이미지를 직접 그리거나 실크스크린을 깐다. 그 위에 크기와 색깔이 다양한 스와로브스키(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유명 브랜드)의 크리스털(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을 하나씩 붙여 점을 찍고, 선을 긋고, 여백을 만든다. 높은 산, 아찔한 절벽, 깊은 계곡, 유장한 강의 흐름, 고즈넉한 정자 등이 화려한 빛으로 태어난다. 빛의 밝음과 어둠으로 산수화의 농담까지 표현되는 셈이다. 영롱한 빛으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작품이다.

첫인상은 그저 화려하기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 작업 과정을 조금만 생각하면 정신과 물질, 전통과 현대, 물질문명의 화려함과 그 극치인 물신주의, 동양과 서양, 끝없는 욕망에서 기인하는 현대인의 소비문화 등으로 생각의 꼬리가 이어진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며 “이질적인 것을 부딪치고 대비시킴으로써 현대인의 깊은 곳에 내재된 욕망 등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작업 과정은 사실 구도자, 수행자와 다름없다. 크리스털 크기는 큰 것이 직경 1㎝, 작은 것은 0.2㎜ 정도다. 소품에는 2만개, 100호 이상 대작에는 22만개까지 붙인다. 물론 색의 효과 등 작품의 완성도를 꼼꼼히 따져가면서 직접 일일이 붙인다. 한 작품에 3~4개월
걸리는 것은 기본이다. 작가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 육체적 노력이 많이 든다”며 그저 웃는다. 어쩌면 나전공방을 한 부친의 장인 기질이 작가의 핏속에 고스란히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대학원(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또래 작가들처럼 숱한 실험과 고민 끝에 비로소 2005년에야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시대적 상황을 깊게 인식하면서 지금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김종숙 작가의 개인전 ‘인공 풍경-변주’는 9일 서울 관훈동 관훈갤러리 1~3층 전관에서 시작된다. 산수만이 아니라 추상적 구성 작업까지 확대된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오색영롱한 빛의 향연 속에 순간순간 변화되는 작품 등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자리다. 22일까지. (02)733-6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