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山水)는 옛부터 많은 화가들이 그려온 대상이다. 사대부 화가들은 물론이고 궁중화가인 화원들, 또 근대와 현대에서도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풍경을 그린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마친 작가 김종숙(45)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천변만화하는 자연을 표현한다. 하지만 김종숙은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크리스탈 조각들로 산수화 작업을 한다.
지난 2005년부터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탈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의 엘레멘츠(Swarovski Element)로 작업하는 김종숙이 최근 제작한 신작을 포함해 총 35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9일 개막했다.서울 종로구 관훈갤러리 전관에서 오는 22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타이틀은 ‘인공풍경(Artificial Landscape)’. 조선조 화가 겸재 정선이 창안했던 진경장수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출발하긴 했지만, 고도의 첨단문명으로 점철된 오늘 이 시점에서 재해석한 진경산수란 점에서 그같이 명명했다.
김종숙은 스와로브스키 엘레멘츠(Swarovski Elements)를 쥬얼리가 아닌 회화적 소재로 사용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풍경을 표현한 산수화로 읽혔다가, 매순간 바뀌는 빛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의 기하추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작품의 내용은 정신성과 이상을 추구하는 동양의 풍경, 곧 산수(山水)의 세계이지만, 소재는 현대문화의 총아이자 고도의 물질성을 지닌 크리스탈이란 점에서 김종숙의 작품은 ’이미지와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대단히 이질적인 조합을 통해 전통과 첨단, 정신과 물질이 충돌하는 현대의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종숙의 작업은 대단한 끈기와 공력을 요구한다. 작은 캔버스에는 2만여개, 100호 이상의 대작 캔버스에는 수십만개의 Swarovski Elements를 붙여나가며 풍경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작품 한점 제작에 서너달씩 걸리는 것은 보통이다.작가 자신과 작품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즉 물아일체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은 정신과 물질, 전통과 현재, 꿈과 현실 등을 함께 품으며 감상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뉴욕 아트넷옥션의 아시아미술 스페셜리스트 헤더 러셀은 김종숙의 ‘인공풍경’ 연작에 대해 “시각적으로, 개념적으로 빼어나며, 세공된 Swarovski Elements로 장식돼 빛을 발하고 있는 회화들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며 “서구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의 전통회화를 재해석해낸 것이며, 보석이나 깨진 유리를 사용해 작업했다는 점에선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미칼렌 토마스, 빅 뮤츠 등 동시대 서구의 예술가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이번 개인전에는 구체적 형상이 드러나는 산수뿐 아니라, 추상적 구성으로 변모된 새로운 작업이 망라돼 영롱한 빛의 향연 속에서 순간순간 오묘한 환상체험을 하게하는 작업을 음미해볼 수 있다.(02)733-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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