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바위산이 우뚝 섰습니다. 구름에 쌓인 오른쪽 봉우리는 꼭대기만 드러났네요. 나무들은 짙은 숲을 드리웠습니다. 기와지붕 아래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김종숙 작가의 산수화입니다. 한지에 검은색 먹으로 그린 게 산수화인 줄 알았는데, 교과서에서 보신 것과는 사뭇 다르죠?
먹 대신 반짝반짝한 것들. 바로 쌀알 크기만 한 크리스털입니다.
121가지 크리스털이 자랑하는 빛의 향연
이 작품 역시 아름다운 크리스털로 완성됐습니다. 맑고 차갑게 빛나는 산의 부피감이 압도적입니다. 금빛 들판에서는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작품에서 색을 표현하는 건 크리스털의 몫입니다. 각각 다른 색깔의 121가지 크리스털이 모여 작품에 입체감을 더합니다. 빛만으로도 질감과 부피감, 농담과 선 굵기가 표현된다니 참 신통방통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보다는 갤러리 조명 아래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조명 아래 보면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만 번을 붙여야 작품이 된다.
“크리스털 산수화”는 그린다기보다는 붙여내는 작품입니다. 우선 아크릴판 위에 밑그림을 마련하면, 그때부터는 오롯이 크리스털을 붙이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아 물론 진짜는 아니고요, 한 보석가공회사에서 제작한 인조 크리스털입니다.
우선 아크릴판을 수차례 접착 코팅합니다. 그리고는 아크릴판 위 밑그림에 접착제를 바른 뒤 핀셋으로 크리스털을 집어 붙입니다. 잠시 마르길 기다린 뒤 크리스털 옆으로 삐져나온 접착제를 긁어냅니다. 여기까지가 작업의 1순환입니다.
100호 크기(가로 162cm 세로 130cm) 작품에 보통 5~6만 개의 크리스털이 들어갑니다. 좀 큰 작품에는 최대 35만 개의 크리스털이 들어갑니다. 150개들이 크리스털 봉투를 몇 개 비웠는지로 계산합니다.
크리스털 개수를 생각하면 최소한 수만 번~수십만 번 붙이는 동작을 반복해야 한 작품이 완성됩니다. 하루 15시간씩 집중해야 겨우 손바닥 크기만큼 완성됩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짧게는 2~3달에서 길게는 1년씩 걸립니다. 마치 도를 닦는 것 같은 과정. 김종숙 작가는 “덕분에 허리랑 목에 디스크도 생겼다. 직업병이다.”라며 웃었습니다.
크리스털, 가장 과거이자 미래인 소재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종숙 작가. 왜 크리스털 산수화를 선택했을까요?김 작가는 나전 공방 장인이었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나전 작업이 크리스털 산수화의 모티브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자개 대신 크리스털인 거죠.
김종숙 작가는 또 “크리스털이란 가장 과거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소재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인조 크리스털은 끊임없이 개발되면서 더 많은 색다른 효과를 줄 수 있는 미래소재라는 거죠. 동시에 크리스털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가장 과거적인 소재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의미를 미래소재에 담은 겁니다.
예술은 무엇의 산물인가예술은 천재성의 산물일까요 끝없는 노력의 결과일까요?
“시인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는 천재시인 랭보의 말도 그럴듯합니다. 소설 쓰느라 너무 오래 앉아있어 탈장한 조정래 작가의 ‘노력’도 숙연해집니다.
김종숙, 한경원 작가의 작품에서는 천재성과 노력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한경원 작가의 불의 산수 전시는 아쉽게도 끝났습니다. 하지만 더욱 더 근본적인 것을 공부하겠다는 젊은 작가는 조만간 더 좋은 작품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김종숙 작가의 크리스털 산수는 19일까지 한남동 갤러리 조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한창 ‘뜬다는’ 한남동의 조용한 골목길, 길이 낯설다면 ‘한국소비자연맹’을 찾아가면 됩니다.
변진석 기자 lamer@kbs.co.kr